1945년 4월, 바이에른주 엘링겐 성 교회에 보관된 독일군의 전리품. © 위키미디어 커먼즈

누군가의 집 거실에 걸려 있던 그림이, 어느 날 전쟁터 한복판을 건너 대륙 반대편 박물관 창고에 숨겨져 있다면 어떨까요? 전쟁은 단순히 땅과 권력을 빼앗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예술품이 주인을 잃고, 국경을 넘어, 때로는 수십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졌죠.

어떤 작품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고, 어떤 작품은 극적으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아트레터에서는 전쟁이 삼켜버린 걸작들과, 그들이 남긴 기막힌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려 해요. ‘전쟁이 훔쳐간 예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작가와 시대의 숨결을 만나볼까요? 🎨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점령지의 명작들을 조직적으로 약탈했습니다. 🎯 히틀러가 꿈꾸던 ‘린츠 유럽미술관’을 채우기 위한 사냥이었죠.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라파엘로 산치오의 《젊은 남자의 초상》(1513~1514)인데요, 폴란드 크라쿠프의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의 《담비를 안은 부인》, 렘브란트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풍경》과 함께 폴란드 귀족 가문이 자랑하던 3대 명작 중 하나였습니다.

1939년,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자 소장품들은 작은 마을 시에냐바의 저택 벽 안에 숨겨졌지만, 불과 2주 만에 발각됐습니다. 작품들은 곧 총독 한스 프랑크의 관저를 거쳐 히틀러가 구상한 ‘린츠 유럽미술관’ 컬렉션에 편입될 예정이었죠. 1945년 전쟁 말기, 레오나르도와 렘브란트의 작품은 기적적으로 폴란드로 돌아왔지만, 라파엘로의 초상은 끝내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마지막 목격 기록은 1945년 1월, 프랑크가 크라쿠프에서 철수하며 작품을 가지고 떠났다는 증언뿐이었어요.

이 초상 속 인물의 정체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학자들이 라파엘로의 자화상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요. 원작의 컬러 사진은 남아 있지 않아, 우리가 볼 수 있는 이미지는 흑백 사진을 인공적으로 채색한 것뿐이죠. 오늘날 작품이 발견된다면 1억 달러(한화 약 1400억)가 훌쩍 넘는 가치를 지닐 것으로 평가되지만, 현재 폴란드 국립박물관에는 빈 액자만이 걸려 언젠가 돌아올 ‘젊은 남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 덕분에 대중문화 속에서도 종종 등장합니다. 🎬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이 작품이 ‘전쟁 중 약탈당한 보물’로 패러디돼, 원래 주인에게 반환되는 장면이 그려졌죠. 실제로든 가상이든, 이 그림은 여전히 ‘찾아야 할 세계의 걸작’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는 대강당 천장을 장식할 대형 작품을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는 《철학》, 《의학》, 《법학》 세 점을 1900~1907년 사이에 완성했지만, 꿈꾸던 명성 대신 사회적 파문이 찾아왔죠. 반쯤 나신의 인물들이 생과 사,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묘사하는 장면은 당시 기준으로 ‘외설’이자 ‘변태적 과잉’이라 불리며 교수진 80여 명의 반대 서명과 국회 논쟁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오직 교육부 장관만이 클림트를 옹호했죠. 결국 작품은 대학교에 걸리지 못했고, 클림트는 국가 의뢰를 더는 받지 않겠다며 선언했습니다.

세 작품은 이후 개인 컬렉터들의 손을 거쳐, 《의학》은 유대인 가문 소장품이 되었다가 1938년 나치에 압수됩니다. 1943년 마지막 전시를 마친 뒤, 이들은 오스트리아 하부의 임멘도르프 성으로 옮겨져 ‘보관’됐지만, 1945년 5월 독일 SS 부대가 퇴각하며 성에 불을 질러 소실됐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현재 남은 것은 몇 장의 흑백 사진과 스케치뿐, 완전한 색채의 원작은 영영 볼 수 없게 되었죠.

이 ‘금단의 그림’들은 전쟁과 함께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그림들이 파괴되었다는 증거도 없어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곳곳에 숨겨져 있던 미술품들은 연합군의 진격과 함께 혼란 속으로 휩쓸렸습니다. 브레멘 쿤스트할레 미술관의 소장품도 예외가 아니었죠. 폭격을 피해 '브란덴부르크의 한 성(城)'으로 옮겨졌던 수천 점의 작품은, 1945년 5월 소련군이 성을 점령하면서 새로운 운명을 맞습니다. ⚔️

당시 소련군 장교였던 빅토르 발딘은 지하 저장고에서 렘브란트, 루벤스, 마네, 반 고흐 등 거장들의 드로잉과 회화를 발견합니다. 병사들이 그림을 찢고, 불태우며, 심지어 횃불 대신 원고를 태워 쓰는 모습을 본 발딘은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챙겨 러시아로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모인 364점의 미술품이 바로 오늘날 ‘발딘 컬렉션’이라 불리는 전리품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원래 나치가 점령지에서 약탈해온 작품들이었습니다. 나치의 손에서 소련의 손으로, 한 번의 전쟁 속에서 두 번 주인을 잃은 셈이죠. 발딘은 평생 “이 작품들은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브레멘을 찾아가 목록을 공개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전리품법과 정치적 이유를 들어 반환을 거부했습니다. 📜 현재 이 컬렉션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며, 독일과 러시아 사이의 문화재 반환 협상에서 상징적인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발딘 컬렉션은 전쟁이 남긴 복잡한 윤리적·법적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치가 빼앗고 소련이 다시 빼앗은 반 고흐의 유일한 펜·잉크 습작인 〈별이 빛나는 밤〉 드로잉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

1874년, 이 황금 의자와 찬란한 금세공품은 대영제국의 탐욕을 자극했습니다. 제3차 영·아샨티 전쟁에서 영국군은 수도 쿠마시를 함락하고 왕궁을 약탈했습니다. 황금 칼, 금장 파이프, 혼령을 씻는 ‘소울워셔’ 배지 등 왕실 보물들이 전리품처럼 쓸려가 런던 경매장과 박물관 진열장에 올라갔죠. 영국은 이를 식민지 지배의 상징물로 과시했고, 아샨티의 영광은 영국박물관과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에 소장되며 유리장 너머에 갇혔습니다. 🏛️

그리고 150년이 흐른 2024년, 이 보물들이 고국 땅을 밟게 됐습니다. 하지만 ‘영구 반환’이 아닌, 3년 + 3년 연장 가능한 장기 대여 형식으로요. 반환 대상도 가나 정부가 아니라 현 아샨티 왕, 오툼포 오세이 투투 2세이며, 그의 즉위 25주년을 맞아 쿠마시 만히아 왕궁 박물관에서 전시됩니다.

영국은 여전히 “법적으로 영구 반환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문화 교류라는 포장지를 씌우지만, 이 귀향은 한때 제국이 탐낸 권력과 부의 상징이자 식민지 약탈의 상징물이, 다시 그 땅의 사람들 앞에 선다는 점에서 식민지 약탈 문화재 반환 논의를 새롭게 열어가는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

1755년,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의 후불화로 걸린 ‘영산회상도’는 가로 4m가 넘는 초대형 불화였습니다. 붉은빛과 녹색이 어우러진 장엄한 화면 속에는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졌죠. 그러나 1954년 한국전쟁 직후, 미군에 의해 여섯 조각으로 잘린 채 사라졌습니다. 스님들과 신도들이 발을 동동 굴렀지만, 전쟁의 혼란 속에서 행방은 묘연해졌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뜻밖의 장소에서 이 불화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수장고에서 ‘석가여래설법도’라는 이름으로 돌돌 말린 채 묵혀있던 작품을 김현정 LACMA 큐레이터가 발견한 것이죠. 이 작품은 사실, 누군가의 다락방에서 발견돼 중국 벽지로 생각하고 박물관으로 판매한 것이었습니다. 📦 날카로운 칼자국, 변색된 색채, 찢겨나간 천…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신흥사의 영산회상도가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더욱 극적입니다. 국가가 아닌 민간단체와 지역 불자들, 시민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 조계종, 신흥사 스님들, 그리고 문화재 반환을 지지한 해외 큐레이터와 학자들까지—10년 넘게 자료를 모으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성보문화재(불교의 교리와 신앙에 기초하여 예배의 대상으로 조성된 조형물을 비롯 교화를 위해 제작된 성물)는 박물관 유리 진열장보다 법당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는 신심 하나로 이어진 노력이었죠.

마침내 2020년, LACMA는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일부를 신흥사에 돌려주기로 합의했습니다. ✈️ 9600km를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한 불화는 66년 만에 설악산 품으로 돌아왔고, 환영 법회 날, 수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 문화재 반환은 전쟁이 빼앗아간 성보를 국가가 아닌 시민과 종교 공동체의 힘으로 되찾아낸 드문 사례이자, 잊혀진 문화유산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과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손꼽힙니다. 🌸

미군기지와 미8군 클럽, 그리고 재즈와 록이 울려 퍼졌던 거리 위에 음악을 중심 가치로 도시 문화를 쌓아온 부평. 누군가에게 음악은 위로였고, 또 누군가에겐 통제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음악이 남긴 흔적에서 출발합니다.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에서 열리는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8.24)는 ‘소리’를 통해 전쟁, 이주, 기억, 공동체의 이야기를 건넵니다.

🎧 음악은 언제나 듣는 자의 것이었을까
‘청음 훈련’, 금지된 노래, 축음기 속의 목소리, 그리고 부를 수 없는 멜로디까지. 소리와 감각, 기억과 권력의 관계를 영상, 드로잉, 사운드로 풀어낸 4인의 작가가 참여합니다.

🧑‍🎨 참여 작가
김영은 – 음악의 정치적 구조를 조명하는 사운드 작업
남화연 – 노래가 지나온 시간과 언어의 흔적을 추적
이희경 – 식민의 기억과 이주의 풍경을 따라가는 드로잉과 사운드
문지호 – ‘따라 부를 수 없는 노래’에 대한 퍼포먼스

장애인 관람 접근성을 높인 전시 환경 또한 인상적이에요. 전시장엔 음성 해설, 수어 해설 영상은 물론 QR코드를 통한 작품 설명 청취, 현장 수어 해설 프로그램도 주말마다 운영됩니다. 

🎬 놓치지 말아야 할 퍼포먼스
문지호 작가의 작품 〈legenda〉는 8월 24일 오후 5시, 전시장 안에서 라이브로 펼쳐질 예정입니다.

《세상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기간 | 25.7.31 ~ 8.24 (월 휴관, 12–13시 휴게시간)
장소 |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 (@bpcf_official)
요금 | 무료
문의 | 032-500-2066
해설 | 수어 & 음성 해설 운영 (주말 한정)
퍼포먼스 | 8.24(일) 오후 5시, 누구나 자유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