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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캄머' 또는 '호기심의 방'은 16세기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시작된 컬렉션 공간이에요. 독일에서는 '분더캄머(Wunderkammer)'라고 불렸고, 프랑스에서는 '카비네 드 퀴리오지테(Cabinet de Curiosités)'라고 불렀죠. 이탈리아에서는 '스투디올로(Studiolo)' 혹은 ‘갤러리아(Galleria)’로, 영국에서는 ‘호기심/경의의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다양한 명칭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열정을 담고 있었어요. 바로 세상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한데 모아 소장하는 것이었죠.

분더캄머에 모인 물건들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분더캄머는 물건 자체의 가치를 넘어 그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즐기는 곳이었어요. 작은 서랍 속에 담긴 해양 생물 표본은 모험담을 불러일으켰고, 이상한 형태의 광물은 그리스 신화와 연관 지어 이야기되기도 했죠. 수집가들은 그저 진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통해 세상의 신비를 탐험하고 자신의 지식과 호기심을 드러내는 공간을 만든 셈이었어요. 이러한 호기심의 공간은, 오늘날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및 동물원 등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

결국 분더캄머는 세상의 다양성과 경이로움을 모아 세상을 보는 창이 되어 준 것이죠. 😉

🇮🇹 이러한 수집의 열정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타났어요. 그중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가 바로 메디치 가문의 프란체스코 1세가 꾸민 '스투디올로'입니다. 메디치 가문은 예술과 과학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이 작은 방 안에는 그들의 호기심과 권력이 모두 녹아 있었습니다.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보일지 몰라도, 여러 신비한 물건과 예술품을 한 방에 모아두어 작은 세상의 축소판처럼 꾸몄어요. 당시 이 ‘스투디올로’는 귀족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졌고, 다양한 학문과 예술, 자연의 경이로움을 한 곳에 모으는 취미로 발전했죠.

특히, 북유럽에서는 16~17세기, 탐험과 발견의 시대였던 만큼 분더캄머가 더욱 확산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수집된 이국적인 물건들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2세, 페르디난트 2세, 폴란드의 아우구스투스 3세 등 각 지역의 군주들이 경이로운 물건들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것은 그들의 지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었어요. 🫅

🇬🇧 무역이 확장되고 신대륙의 물건들이 영국으로 들어오면서 영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하고자 했고, 이를 보관할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각종 자연물과 인공물을 가득 채운 이 ‘호기심의 방’은 오늘날의 박물관과 미술관의 모태가 되었죠.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대표적인 공간 중 하나가 옥스포드 대학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은 1860년에 설립되어 7백만 개가 넘는 소장품과 3만 개 이상의 동물 표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의 기원은 존 트라데스칸트 부자의 '트라데스칸트 아크(Tradescant’s Ark)'라는 개인 수집품에서 비롯되었아요. 이후 그들의 수집품은 엘리어스 애쉬몰(Elias Ashmole)이 기증해, 옥스포드 대학에 근대적인 박물관을 탄생시키는 초석이 되었죠. 이러한 수집물들은 이후 옥스포드 대학 자연사 박물관과 애쉬몰리언 박물관으로 이어지며 영국의 학문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호기심의 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현대미술가인 그는 "미술계의 장난꾸러기"라 불리며 독특한 작품과 유머로 주목받는데요. 그의 작품은 분더캄머가 담은 호기심과 경이로움, 그리고 혼돈의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죠.

그의 작품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놀라움과 질문을 던집니다. 대표작인 ‘La Nona Ora’는 운석에 맞은 교황을 묘사하고, ‘Comedian’은 벽에 테이프로 붙여진 바나나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어요. 이런 기이하고 반항적인 작품들은 다양한 호기심을 일으킵니다. 🍌

카텔란의 2007년 뉴욕 구겐하임에서 열린 회고전 <All>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거대한 로툰다 중앙에 매달아 놓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 이 전시의 중심에는 그의 대표작인 ‘노베센토(1997)’가 있었는데, 천장에 매달린 박제된 말의 모습은 오늘 아트레터 첫 부분에서 소개한 교회 천장에 매달린 악어를 연상시킵니다. 카텔란은 자신의 작품을 과거의 컬렉션과 교묘하게 연결지으며, 경이로움을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했어요. 그의 새로운 시각은 우리에게 또 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지막으로, 수집의 즐거움과 비밀스러운 공간을 멋지게 담아낸 영화 <베스트 오퍼’(2013)>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네요! ’시네마 천국’으로도 유명한 이탈리아 거장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경매사 올드먼(제프리 러시 분)의 미스터리한 삶을 통해 '분더캄머'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림과 예술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명작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가장 가슴이 두근두근할 장면은 주인공 올드먼의 '비밀 방'이 열리는 장면입니다. 😍

올드먼의 방은 마치 분더캄머처럼 수백 점의 초상화로 가득 차 있어요. 이 방은 그의 오랜 수집 생활의 결정체이자 인생을 보여주는 공간이죠. 특히 이 비밀 방의 풍경은 16~17세기 유럽 귀족들이 세상에서 찾아낸 온갖 희귀한 것들을 모아놓고 자랑하던 그 시대의 컬렉션, 그리고 그 방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는 공간을 떠올려요.

<베스트 오퍼>는 미술품 경매와 수집,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과 사랑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작은 '호기심의 방'이 열릴지도 몰라요. 박물관 같은 거창한 곳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소소한 취향의 공간이 바로 나만의 분더캄머가 될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