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아르침볼도(1526–1593)는 밀라노 두오모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프라하로 이주하여 합스부르크 황제 막시밀리안 2세와 루돌프 2세가 가장 좋아하는 궁정 화가 중 한 명이 되었어요. 특히 루돌프 2세는 예술과 건축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당대의 뛰어난 예술품들을 수집하는 등 문화적으로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병약하고 무능하며 나태한 심성 때문에 말년에 힘을 잃게 되었어요.

루돌프 2세는 '예술의 방'이라는 뜻의 쿤스트카머(Kunstkammer)에서 뒤러와 브뤼헬의 작품을 비롯한 그림과 조각, 그리고 시계, 나침반, 망원경, 다리가 세 개 달린 닭, 나무에서 솟아난 사슴 뿔 등 기형적이고 이국적인 수집품을 수집했습니다. 그에 비해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오히려 너무 평범해 보이네요.😂

아르침볼도는 야채와 과일로 만들어진 루돌프 2세의 괴상한 초상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초상화 속 야채와 과일은 황금 시대의 풍요로움과 왕의 통치가 자연처럼 완벽하고 조화롭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이미지에는 권력에 대한 아첨과 풍자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당시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류 계급은 유머 감각과 적절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아르침볼도는 합스부르크 궁정에서 25년 이상 근무할 만큼 총애를 받은 화가였습니다. 막시밀리안 2세로부터 <4원소> 연작을 그리라는 명을 받았고, 공기, 불, 흙, 물과 관련된 동물과 광물을 조합해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상화를 완성했습니다. <불 Fire>에서는 뺨이 큰 부싯돌로 그려졌고, 목과 턱은 불타는 촛불과 기름 램프로, 코와 귀는 불을 지피는 도구(fire steel)로 표현되었어요. 황금양모 훈장의 깃 아래에는 제국의 이중 독수리가 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와 막시밀리안 2세 황제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흙 Earth>에는 신화 속 헤라클레스를 지칭하는 사자 가죽이 보입니다. <물 Water>은 무수한 수생 생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62종의 생물들이 그려졌으며, 흔한 식용 물고기들은 빠지고 특이한 동물들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아르침볼도는 동물들 사이의 크기 관계는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거북이 좀 보세요! 표정이 무서우면서도 귀엽지 않나요? 🐢

합스부르크 왕가는 그들의 혈통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림 속 요소들은 모두 자연물입니다. 환상적인 생물이나 식물 따윈 없으며, 모든 것이 현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1573년 그린 <봄>엔 80여 종류의 꽃과 식물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꽃들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광과 자연을 상징합니다. 이 그림은 당시 스페인 왕국의 펠리페 2세에게 선물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요.

<여름>의 흉상에서는 볼과 목 부분이 여름 과일과 채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과 입술은 체리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눈은 두 개의 작은 배 사이에서 체리가 유리처럼 빛을 내고 있습니다.

<가을>에서는 무르익은 배로 만들어진 코, 사과 볼, 석류 턱, 버섯 귀를 볼 수 있습니다. 머리는 붉은 포도와 백포도가 월계수처럼 덮여 있고, 그 위에 거대한 하얀 호박이 있습니다.

<겨울>의 흉상은 까끌까끌한 나무 줄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입은 두 개의 오래된 버섯으로 그려졌고, 가슴엔 두 개의 레몬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돌출되어 있습니다.

아르침볼도는 직업과 관련된 물건들을 사용해 직업인들의 재치 있는 초상화를 그리기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사서, 법학자(변호사), 요리사, 채소 재배자 등 다양한 직업인을 그렸어요.

채소들을 이용해 그린 채소 재배자의 모습입니다. 엇! 거꾸로 뒤집어보니 채소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모양이에요!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 보는 이의 호기심과 해석의 자유를 주는 점이 매우 유쾌합니다. 아르침볼도는 채소 재배자를 다산의 신이자 정원의 수호신인 프리아포스로 표현했습니다.

이 초상화는 볼프강 라지우스라는 인문학자이자 역사가를 그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림 속 인물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섬겼는데, 아르침볼도는 사서들과 학자들에 대한 비웃음과 풍자를 담았습니다. K.C. 엘하드는 이 그림에 대해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얻는 데 더 관심이 있는 물질주의적 책 수집가들”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런 사람 알지 알지🙄)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20세기 예술가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초현실주의의 할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한 현대 비평가는 아르침볼도가 정신 질환을 앓았다고 이론화했지만, 다른 비평가들은 그가 그러한 희귀한 집단에서 살아 남으려면 독특한 개성과 재치가 있어야 했다고 주장했어요. 아르침볼도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추대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림을 통해 비꼬는 사람이었지만, 꽃, 채소, 자연을 정말 사랑했고 그것들을 인간의 아름다움과 결합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